<aside> <img src="/icons/hashtag_lightgray.svg" alt="/icons/hashtag_lightgray.svg" width="40px" /> 수신인 엘린 님의 글

의리 내용 출처 표기 후 외부 공개 (가능) 발췌한 글로 토론 및 비판적인 피드백 (가능)


유리병 속 케이크: 쫌쫌따리

제16회 의리 참여자

보내는 사람 [](https://leogi-desk.notion.site/a102837b87aa43bf924270a2e05e3577),

받는 사람 엘린


<aside> ✉️ 발신인 [](https://leogi-desk.notion.site/a102837b87aa43bf924270a2e05e3577) 님이 보낸 의리입니다.


이번에 올려주신 짧은 글, '유리병 속 케이크' 잘 읽었습니다.

엘린님께서는 쏟아내듯 쓰셨기에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면을 두고 그리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저는 이번 글이 굉장히 솔직하고 명료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까다로운 기교를 발휘하거나 욕심을 부리는 대신, 솔직한 감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글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이처럼, 엘린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명료한 주제의식과 다정한 감성을 좋아해요. 엘린님 글에서는 세상과 사람을 향한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이번 글에서 특히나 좋았던 부분은 무너져서 아무 생각도 없이 죽은 듯이 잠만 자던 나를 일으켜세우는 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와 사소한 행동들이라는 점이었어요. 저축한 돈이 없고, 환기와 청소부터 시작해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 무척 현실적이면서도 진솔하게 느껴졌습니다. 길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저 또한 이 글과 똑같은 상황과 심정을 겪었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고요.

또 하나 두드러지는 점은 글의 절묘한 밸런스에요. 케이크와 촛불&촛농으로 주제의식을 뚜렷하게 드러내셨고, 그 묘사에 공을 들이신 만큼… 상대적으로 인물의 감정 묘사는 단순명료하게 표현해내신 듯해요. 그 밸런스 덕분에 부담없이 읽히면서도 제 일인 것처럼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다소 의아했던 부분은 왜 '유리병 속' 케이크일까 하는 점이었어요. 유리병이 언제부터 씌워지는 걸까 의아해하며 읽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촛농이 녹으면서 케이크를 덮어씌워, 자신만의 유리병을 만든 것일까요? 그 안에 든 달콤하고 여린 케이크가 아무에게도 닿지 않도록…그 스스로도 나이가 듬에 따라 그 맛도 색도 즐길 수 없도록.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찡하며 여러 생각이 들어요.

다정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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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발신인 님이 보낸 의리입니다.


[제16회 의리감상회]

(안녕하세요 엘린님! 글을 읽으면서 감상을 쓰다보니 점점 감상평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가 나와버렸네요 ㅎㅎ... 두서없이 쓴 감상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살고자 노력했던 그 시간과 행동들이 역설적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을 때...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 참 슬프죠. 정말이지 나는 그저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에요. 글을 읽으면서 케이크와 생일 초라는 오브제로 그 과정들이 단번에 시각화되어 다가왔어요. 케이크 위에 점점 많은 초와 촛농이 쌓이고 그로 인해 무너져내리는 케이크의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b급 호러무비의 분위기로 그려졌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우두커니 초를 부는 화자의 모습이 상상되었고요. 그래서 케이크가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화자가 그걸 인식했을 때, 아 이제 어떡하지? 전부 끝인가? 라는 걱정과 우려부터 들었어요. 하지만 이어지는 긴긴 잠 -마치 암흑같은 동굴 속에서 겨울 잠을 자는 것처럼- 그 끝에는 결국 봄이 오더라구요. 화자가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집을 청소하고 커튼과 창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 이제껏 어두컴컴했던 방이 화악 밝아지는, 안도와 희망이 밀려드는 경험을 했어요. 망가진 케이크는 복구하면 되는건데 왜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물론 처음의 완벽한 케이크로는 복구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뭐가 문제일까요.

그저 나는 태어났고, 그저 살아가면 되는 걸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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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발신인 [스러기(모임장)](https://leogi-desk.notion.site/cf710743e0884563ac1257d031a44641) 님이 보낸 의리입니다.


처음에 이 글의 ‘유리병 속 케이크’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 시적인 글이라거나, 또는 판타지일거라고 상상했어요. 유리병, 케이크… 얼핏 이 두 가지 조합으로 보니 저는 밝고 화사한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요. 햇빛이 반짝이는 창가, 방금 물을 줘서 푸르게 싱그러운 화분, 화병에 꽂힌 탐스럽고 사랑스러운 분홍빛 장미, 부드러운 곡선이 눈에 띄는 찻잔에 붉게 우러나는 홍차, 정갈한 디저트용 포크와 곱게 접힌 냅킨, 희고 엷은 레이스를 테이블보 위에 깔아두고 유리로 된 돔을 씌워둔 과일이 듬뿍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 같은 이미지 말이죠. 그래서 제게 보내주신 글 설명을 읽어보았을 때에도 유리병 속에 있어서 내 것이 될 수 없는 케이크라거나,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리는 주인공 같은 추측을 했죠. 그리고 그런 제 예상은 모조리! 완전히! 빗나갔군요!

<유리병 속의 케이크>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고, 정밀하게 따지자면 판타지에 속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직설적이네요.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몽글몽글한 글감을 사용하고 전반적으로 은유로 이루어져있음에도 이토록 직설적일 수 있다는 점은 엘린님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인 것 같아요. 예전에 보여주셨던 동화인 <분홍색 휴식>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엘린님이 쓰신 글을 보면 묘하게 현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철하고 날카롭다고 느껴졌거든요.(부정적 의미 아님!)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녹여낸 글이 엘린님의 단정한 문체와 잘 어우러지기도 하고요.

이 글의 주인공의 태도는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정도로 현실적이라,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다만 글의 길이가 굉장히 짧기 때문에 구조나 구성이 글의 설정과 소재에 비하면 단순한 편이라 긴 글로 쓰거나, 아예 완전히 압축해서 시로 쓰인 걸 보고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여력이 되신다면―나중에 좀더 긴 단편소설 정도의 분량으로 써보시는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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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발신인 [김짓숴](https://leogi-desk.notion.site/62d2321895ad4ea4ba7353ee589a8d28) 님이 보낸 의리입니다.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유리병 속의 케이크가 뭐지?'였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에 '갇혀있다'는 것이었음을요. 화자는 자신의 케이크, 촛농, 그러니.까 자신의 세계와 '태어났음의 가치', 자신이 태어날 만 했을 가치와 그 증명에 갇혀 있습니다. 자신에게 오는 강요, 그리고 자신이 이룬 성과밖에 보지 못하지요. 화자는 다른 이의 케이크를 볼 수 없지요. 그의 세계의 방식처럼 다른 이는 얼마의 성과를 이루고 얼마나 축하받는지를 볼 수 없고, 때문에 자신이 얼마만큼 축하받을 수 있는지 즉 얼마가 '마땅한' 성과를 이루었는지를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의 세계의 방식처럼 생일, 탄생은 그저 '그 자체로 축복받을 일'이라는 것도 짐작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그는 더더욱 조급해집니다.

글을 읽는 동안 화자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되어 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이 나이면 이건 이뤄놨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던데, 나도 나름 애쓴 것 같은데 축하 받는 자리 앞에 서면 내가 내 탄생과 키워줌에 대해 '빚'을 진 것을 다 갚지 못한 것만 같은 이 부채감. '이래도 되나? 이만한 일을 했나? 축하받아도 되나?' 끝없이 자기 자신에게 자격만을 묻게 되는 반복.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이해됐습니다.

자신을 끝없이 갈고 갈며 달려나가는 사람들은, 치열하기에 존경 받고 그 때문에 그 치열함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갉아 먹는 일임을 알면서도 치열함을 위장한 가혹함이 습관이 되어버리고, 무리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점이 됩니다. '이만큼도 못하면' 하는 생각으로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지요. 그 마음을 알기에 화자의 표현에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촛농을 녹인 게 아니었다. 나는 촛대를 녹이고 있었다. 무너뜨리고 있었다. 허물어 버렸다."라는 표현이요. 그렇죠. 끝없이 달리고 애써 촛농이라는 수확을 얻고 자신이 뿌리 박은 곳에 보다 단단히 붙은 것이 아니라, 초라는 자기 자신 자체가 녹아버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디 뿌리 박고 서 있을 수도, 더 달려나갈 수도 없게끔... 자기 자신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거지요. 너무나 애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을 용도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자격으로도 느끼지요. 사실 탄생이라는 건 그저 탄생 만으로, 화자가 화자인 것만으로, 누군가가 누군가인 것만으로 축복할 일인데, 우리들은 자주 탄생이 축복받으려면 '축복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 축복받을 만한 사람이 이미 자신이었음을 자꾸 까먹습니다.

사실 화자가 적극적이거나 소심치 않은 사람이라곤 느끼지 못했는데, 곧바로 자신의 세계가 자신에게 강요하던 것들을 깨닫고 그만두는 것을 보고 참 멋진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참 강한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우리가 쫓기며 살아간다는 걸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생일은 그저 내가 태어난 날이었다."라는 말에 오랫동안 마음이 쓰였습니다. 참 맞는 말인데, 우린 늘 '축하'에 너무 무거운 이유들만을 붙여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래간만에 큰 이유 없이 케이크를 먹자 했습니다.

'짧지만 쏟아내듯 쓴 글이라 정돈이 안 된 느낌도 있어요. 그 부분마저 화자의 상태랑 어울리는 것 같아 그냥 두었지만 독자들 입장에선 어떤지 궁금해요.'라고 적어주셨는데, 정말 말씀 그대로 화자의 정신 상태와 연결되어 느껴졌습니다. 마치 <아일랜드>에서 진실을 깨닫는 순간처럼, 점점 자신이 알고 있던 현실과 '진짜'의 깨달음이 조각나며 뒤엉키는 느낌이었습니다. 급박하게 깨닫고, 정작 깨달음을 얻은 바로 그 순간은 조용합니다. 아, 그랬구나. 내가 이걸 잊었구나. 하면서요. 글의 형태 자체는 주인공과 잘 어울렸지만, 완성된 글이라고 하기엔 조각 글의 느낌이 많이 강한 것 같긴 합니다. 너무 한순간, 한 사건만을 이야기하고 드러나는 인간이나 배경의 정확함이 없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만을 위해 달려가고 있어 좀 직설적인 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건 정말 정말 여담입니다만, 최근 여러 검사들을 통해 제가 오랫동안 저 자신에게 분노하던 일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데 왜 나는 못하나 하며 서러웠던 일들이 저에겐 애당초 불가능했던 일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전 정말로 그런 것들을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당연했지요. 내 '문제'가 나의 특성이 아니라 나의 병, 한계였다는 걸 깨닫고는 마음이 묘했습니다. 아, 하려고 해도 안 됐던 거구나. 내가 안 한 것도,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었구나. 나 자신을 인정해 주려다가도 그러지 않은 날들이 너무 많아 나를 모자라게 느끼는 것이 당연해진 지가 너무 오래되어 쉽게 날 인정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사람의 세계는 정말 각기 다르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저의 고통을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 글에 정말 크게 감사합니다. 자신의 세계에게 강요받고 상처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마음 쓰며 읽을 수 있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번 올려주셨던 글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 놀란 마음과 너무나 이해되는 마음으로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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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자 엘린 님의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to. 귤

사실 이 글을 정리하려고 해보았는데 오히려 글이 망가진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좀 토해낸 것 같더라도 솔직하게 올린 글이에요. 그 점이 오히려 공감하기 쉬웠다니 다행이에요. 제 안에서 맴돌던 생각을 번뜩 잡아채서 후룩룩 쏟아낸 글이 맞아요. 명료한 주제의식과 다정함이 느껴졌다니 기뻐요. 제가 전하려던 게 잘 전해진 것 같아요:)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 때에도 소위 인류애를 채우는 이야기를 떠올리곤 해요. 제 글도 누군가에겐 그러길 바랐어요. 귤 님께 그 희망이 가닿은 것 같아 행복하네요.

무너진 이를 일으키는 건 의외로 현실적인 것이죠. 소설 속 다정은 드물고 또한 다정이 주변에 있다고 해도 그걸 짚고 일어나는 건 스스로이니까요. 죽고 싶지만 실제로 죽을 지경이 되면 살고자 하고 마는, 그런 걸 담았던 것 같아요. 귤 님의 공감을 산 게 기쁘면서도 슬프네요. 이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이 적길 바라면서도 이 아픔에 위로받는 사람을 바랐거든요.

인물에 깊이 몰입할수록 피곤함과 우울함이 깊을 것 같아 부러 건조하게 서술했어요. 몰입이 잘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유리병은, 상징 같은 거예요. 자기 케이크는 자기 눈에만 보여요. 주인공 눈에도 타인의 케이크는 유리병에 가려 안 보이죠. 결국 케이크는 자기만족의 시작이에요. 그런데, 어느새 주인공은 그 사실을 잊고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요. 사람들이 흔히 잊곤 하는 그걸 유리병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다정한 감상 감사합니다!


to. 고

글을 쓰면서 제 머릿속에 있는 풍경을 담으려고 노력했는데 글이 단번에 시각화되었다니 기뻐요. 미국의 b급 호러무비의 분위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진짜 그런 느낌이네요! 케이크가, 인생이 망가졌어도 끝이 아니라는 걸 쓰고 싶었어요. 처음의 완벽과는 좀 달라도 자신만의 케이크는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고 님 말씀대로 무엇이 문제일까요. 자기 케이크인데 말이에요. 태어난 김에 살아간다는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애쓰지 않고 적당히 즐겁게 살면서요. 그게 잘 전달된 것 같아 기쁘네요. 감상 감사합니다!


to. 스러기

아, 제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글을 써나갔군요! 예상이나 추측에 맞지 않았다니 즐겁네요. 유리병 속의 케이크, 라는 단어들만 봤을 땐 확실히 햇빛이 가득 들어찬 오후의 티타임이 연상되는군요. 저는 아예 생각지 못한 시각이라 좋네요:)

정제되지 않아 더 직설적인 것 같아요.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현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고개 돌린다고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제 글에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니 기뻐요. 세상을 냉철하고 날카롭게 그러나 냉소적이진 않게 보고 싶어요. 그 고민을 알아채주셔서 신기하고 신나네요.

여력이 된다면 좀 더 길게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쓰는 글이 마무리 되면 한 번 건들여 보고 싶네요. 감상 감사합니다!


to. 김짓숴

맞아요. 중요한 것은 속에 '갇혀있다'는 것이에요. 처음 목적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공은 스스로의 유리병에 갇히지요. 조급해할 필요 없는데도, 자기 자신의 속도를 잃고 질주하면서요. 그 점을 잘 짚어주셔서 기뻐요.

<이 나이면 이건 이뤄놨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던데, 나도 나름 애쓴 것 같은데 축하 받는 자리 앞에 서면 내가 내 탄생과 키워줌에 대해 '빚'을 진 것을 다 갚지 못한 것만 같은 이 부채감. '이래도 되나? 이만한 일을 했나? 축하받아도 되나?' 끝없이 자기 자신에게 자격만을 묻게 되는 반복.>

이 모든 감상이 너무나도 주인공이 느끼던 거라 가슴이 아프네요. 이런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썼음에도 이 고통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기를, 혹은 없길 바랐거든요. 제가 느끼는, 또는 그 이상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울지 알 수 있으니까요. 이 사회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죄를 나눠든 채 부질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요.

주인공이 자신의 세계가 망가져가는 걸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난 것처럼 짓숴 님께도 그럴 힘이 생기길 바라겠습니다.

<오래간만에 큰 이유 없이 케이크를 먹자 했습니다.> 이 문장이 참 좋아서 오래 응시했어요.

직설적인 시가 맞는 것 같아요. 이 글을 뭐라고 해야할까 고민했는데, 직설적인 시였네요. 완성도가 떨어지는 점은 나중에 단편 소설로 다듬어보고 싶네요.

저도 여담을 붙이자면, 저는 꽤 예전부터 제 최선이 남들에겐 모자라보인다는 걸 느꼈습니다. 책을 찾아보고 기사를 읽어가며 제 상태를 정리한 단어를 찾아냈고 실제로 그 병명이 제 조각이 맞았어요. 그러나 그 병과 오래 함께하며 그 병조차 나의 모자람이 아닌가 싶었지요. 그게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아도 자꾸 마음 한구석에서 변명이라고 외쳤거든요. 수 십 명의 사람이 있으면 수 십 개의 최선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싶었어요. 그 글을 쓰며 닿길 바라던 게 짓숴 님께 잘 간 것 같아 마음 깊이 안도와 기쁨이 우러나오네요.

<저의 고통을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 글에 정말 크게 감사합니다. 자신의 세계에게 강요받고 상처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마음 쓰며 읽을 수 있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감상 정말 감사합니다. 평온함이 일상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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