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재난 관련된 글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처음 시작할 때 혹여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어떡할까 걱정하면서 시작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초반 부분에 직/간접적 인용을 설명해주신 부분이 인상깊었는데, 저작물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기도 했고 이 글 안에서 해당 책이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은유적인 표현을 워낙 못 쓰기도 해서 글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렷한 그림보다 비유로 표현해내는 묘사가 이 글의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있었는데요. 초반 시작할 때, 이 문장이 좋아서 몇 번을 곱씹어서 읽었습니다. '과거를 모방한 대화는 도통 누그러지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꾸만 시들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와 결국 끝끝내 모호하게 매듭을 짓는 대화가 떠올라서 더욱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서점에 오는 손님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쎈 수학에 잽을 날리다가 들켜서 후다닥 나갔다는 게 어떤 모습인지 알 것 같아서 글을 읽다가 웃기도 했습니다.
며칠 후에 수령할 수 있다면 좋았고 > 이 부분에서 '있다면' 보다는 '있어서'가 조금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려 봅니다 : )
묵시록적인 전운이 감돌았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출근하고 등교했다. 이 부분에서 재난에 다소 둔감한 모습이 떠올라서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되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과 세상에서 잊혀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관계가 재미있었고 그 둘 각각의 세상은 다른 것들과 단절되어 외롭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그래서 글 전체적으로 메마르면서도 그 둘이 또 서로의 위로가 된다는 점에서 차갑지 않은 게 글의 전반적인 무드로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글에 책을 인용하신 부분마다 숫자를 달아두셨는데, 아무래도 색이 같다 보니, 문장의 도중이 잠깐 끊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 옅은 색으로 해주시면, 유려한 문장을 읽는데에 방해 없이 더 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제가 예전에 디자인을 컨펌하는 일과 관련된 쪽을 했던 지라 눈에 들어온 걸 수도 있습니다.
시간여행자를 보고 싶으셔서 기획하셨다고 했지만, 저는 뒤로 가면서 나온, 부승관이라는 인물의 '늦어가는 감각' 부분이 좋았어서 이 인물에 더 빠져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 영화나, 책, 각종 콘텐츠를 통해 세상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점에서도 그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때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불안이었다면, 후반에 나온 불안은 인물과 인물 사이의 불안으로, 보다 부승관의 내면을 볼 수 있어서 그 부분이 좋았습니다. 자꾸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그게 완벽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따라 흘러 자라나는 인물을 따라가는 방법이라고는 부지런히 그 곳을 찾는 것 뿐이었다는 게, 꽤 절실하게 느껴졌어요.
둘의 관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떨지 궁금하다고 하셔서 일부러 참고 영상은 보지 않았습니다. 추후 글을 다 읽고 보려고 했는데, 예전에 예능에서 둘이 투닥거리는 걸 본 적 있어서 제게 둘의 이미지는, 다소 뻔하지만 톰과 제리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 글을 통해서 본 둘은 꽤 닮아있는 모습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