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든 생각은 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동화 같은' 판타지였어요. 본디 판타지를 읽다 보면, 특히나 동네를 번지수 등으로 구역 구역 특징별로 나누어 놓은 판타지를 읽다 보면 쉽사리 열차나 기차나 첫 무대가 되곤 하잖아요. 그 때문인지, 열차에 뭉친 세 사람의 등장만 보고서도 마음이 마구 두근거렸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내실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꽃가루 학회라니...! 고작 직장인이 마술사 모자라니...!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 당연하게 나누는 지점이 판타지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달콤한 동화적인 판타지를 정말 사랑하거든요. 때문에 뭔가... 객관적인? 어떤 비평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조금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아주 낭만적이고 따뜻한 세계를 그려냄과는 별개로, 서술자의 서술 표현이나 시선 같은 것은 무척 단정합니다. 담백하고요. 무언가가 많이 꾸며져있고 문장 자체가 낭만적이라든지 화려하다든지 하지 않음에도, 그럼에도 이 세계의 향취가 물씬 느껴지는 것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단정한 문장들임에도 '괴짜' 혹은 '유난'으로 느껴질 수 있는 등장인물들을 아주 다정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서술자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임을 드러내고 있단 느낌을 받았어요.
"단어에 맛이 있다면 요람은 단내가 뚝뚝 흐를 것이다. 여인은 입안에 굴러다니는 단 맛을 잠시 음미했다." 전 이 문장이 정말... 충격적일 만큼 좋았습니다. ...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딱 보자마자 어떻게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말을 입안에서 굴린다는 표현은 애당초 존재하는 표현인데, '굴린다' 혹은 '굴러다닌다'라는 것이 실제로, 정말 동사의 아주 그대로 된 의미로 이렇게 재현된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인 센스라고 느꼈습니다. 저도 입안에 순간 꿀 맛이 확 퍼트려진 느낌이었어요. ㅎㅎ 금빛 물결 2번지가 하필 빵이 유명하단 것도 좋았습니다. 금빛 물결이 밀밭을 나타내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처음엔 이들을 보면서, 아름답긴 한데...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렇게 말을 거는 목적이 있겠다, 혹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신났지,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검은 여인께서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희도, 여인께서도 차츰 알게 되지요. 이들의 대화엔 장벽이 없다는 것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꽃가루 학회 연구자의 이야기도, 금빛 물결 2번지엔 빵이 유명하단 이야기도, 그 어떤 이야기든 괜찮다는 것을요. 단지 서로의 이야기만이 목적이고, 사실 이 대화엔 '목적'이랄 것이 없다고 보는 게 마땅할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목적이 없는 행위란 것은 피로도가 없는 행위라는 것이고, 전 이들의 대화 자체가 거의 '휴식'과 동일시되는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이들의 대화를 불편치 않게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그 '휴식'에는 색이 생기지 않습니까. 아주 선명하고 아름다운 분홍빛의 색채가요. 꽃가루 학회 연구원분께서는 파란 리본을 자꾸 드러내시는데, 체감상 여인은 단지 여인으로만 호칭되고 심지어 색이 표현되어도 '검은색'만이 등장하지요. 아마 이 이야기의 종착지는 이 여인도 자신을 나타내는 색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람이란 것은 쉼을 의미하는 동시, 흔히들 삶의 시작을 표현하는 데에도 쓰는 단어잖아요. 자신의 속에 숨겨져있던 진분홍색을 드러내는 것이 이 휴식의 가치가 아니었을까 했습니다. 분홍빛 물결 앞에서 깊은숨을 몰아쉬며 개운한 웃음을 짓고 있을 여인이 훤히 그려졌어요. 상쾌하고 기쁜 여운이 오래 남는 마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또, 좋았던 포인트 중 하나는 꽃밭이 바로 앞에 있단 것이었어요. 굳이 찾지 않아도, 굳이 멀리까지 나서지 않아도, 분홍빛 파도는 이미 여인의 코앞까지 달음박질쳐 다가와 있잖아요. 대화에서도 계속 의미를 찾으려 하고, 꽃밭도 어디 있는지 찾아내야 하겠다는 생각과 각오를 했었을 여인에게 그 무엇도 구태여 찾아낼 필요 없었던 오늘은 아주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거예요. 엄청 값진 경험이겠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딱 처음부터 열차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세계관도 그렇고, 이야기를 읽는 내내 '양말도깨비'라는 작품이 떠올랐기도 했습니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세계관이 있다면 자꾸 자꾸 읽고 싶을 만큼 행복한 세계였어요. 정말 감사히 읽었습니다. 부디 오늘이 분홍빛 꽃밭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