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제가 시를 읽고 쓰는 건 좋아해도 해석은 영 잼병이라는 점을 쿠션으로 깔고 가겠습니다🥹 짓숴님의 글을 대차게 곡해해도 이해해주시길...
우선 저는 이 종을 이번에 처음 알게돼서 열심히 찾아봤는데, 몇십년동안 살다가 마지막에서야 꽃과 열매를 맺고 얼마 안 가서 죽는 나무더라고요. 식물의 세계는 신비하다... 그래서 제가 읽어낸 <탈리포트 야자나무>의 중심 주제는 불멸자(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의 슬픔입니다. 화자는 우선 어린 것들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봄이 온다는 것은 그에게 더는 탄생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짧은 찰나 후 예정된 죽음일뿐이죠. 그에게 타 존재(아마 다른 한해살이 식물들)는 이미 죽은 자들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화자에게 봄은 죽음의 계절입니다. 그는 봄이 도래하면 비애와 탄식을 내뱉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배신을 슬퍼합니다. 봄은 배신의 계절입니다. 그는 번번이 죽음을 기대했다가 그에 배신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작에 끝이 있으리라는, 그러니까 다른 존재와 '같은' 끝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해마다 내버려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자는 고독을 슬퍼합니다. 찰나의 필멸이 가득한 세계에서 화자는 이질적이라 고독합니다. 봄에 겉으로 보기엔 동질적인 새파람을 영영 잃을 수 없는 절망絕望이 있습니다. 어린 것들은 분홍꽃도 되고 단추도 되고 하는데, 화자는 영원히 단추를 절망切望하기만 합니다. 사실 원하지만 갖지 못한다는 것은 절망絕望과 절망切望을 한 단어로 만들죠. 그렇다면 여기서 단추는 무엇인가... 일단 탈리포트 야자나무는 생의 끝에서야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씨앗은 단추로도 만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다른 식물의 씨앗도 단추가 되리라고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1연에서 화자는 구멍을 갖고 싶다고 했고, 마지막 연에서는 네 개의 구멍을 가진 둥그런 '결론'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래저래 찾아봤지만 솔직히 도저히 모르겠어서(ㅋㅋㅜ) 그냥 중심주제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어쩌면 구멍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추는 기본적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꿰이고 엮임으로써 그 쓸모를 찾는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자는 다른 존재와 꿰이고 싶은 듯합니다. 엮이고 싶은 듯합니다. 이 영원에 한없이 가까운 고독을 끝내고 한데 엉기고 싶은 마음이 단추라는 형태로, 타인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구멍에 대한 소망으로 발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단추로서 결론지어진다면 화자는 단추 이전의 씨앗, 씨앗이전의 열매, 열매 이전의 꽃이 (죽음이 도래했기에) 살며시 서러워하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겠죠.
이 고목이 부디 자유로워지길...🥹🥹 그리고 너무 많이는 슬퍼하지말고 지금의 생을 즐기길ㅋㅋㅋㅋㅜㅜ ... 행복해라행복해라 조금 저급(?)한 비유를 해보자면 마이너장르 고인물(궁극의 연성을 위해 영원히 연성을 못하는 타입)이 찍먹뉴비들(연성 하나 하고 딴거하러감)을 바라보면서 슬퍼하는 상황으로도 느껴져서 괜히 다른 방향으로도 짠해졌네요.
오랜만에 시를 씹뜯맛즐하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